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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초사지 당간지주(보물, 만안구 예술공원로103번길 4(석수동)

당간지주는 사찰의 깃발인 ‘당’을 거는 깃대인 ‘당간’을 세우기 위해 지탱하는 기둥을 말합니다. 중초사지 당간지주의 서쪽 기둥 바깥쪽에 글씨가 새겨져 있어 당간지주가 신라 흥덕왕 원년(서기 826년)에 채석하여 다음 해인 827년 2월 30일에 완공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중초사지 당간지주는 만들어진 연대를 알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당간지주입니다.
만안교(경기도 유형문화유산, 석수동 679)

만안교는 효성이 지극한 조선 정조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인 수원 화산능을 참배하러 갈 때 참배행렬이 편히 건너갈 수 있도록 만든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홍예석교입니다. 원래의 능행길은 과천길이었으나, 교량이 많고 남태령 고개가 험해 길을 닦는 백성들의 부담이 커 정조의 명으로 길이 평단하고 넓은 금천로로 바뀌었습니다. 이 다리는 당시 경기관찰사인 서유방의 감독 아래 착공 3개월 만인 10월에 완성된 것으로 7개의 홍예수문과 그 위를 화강암 판석과 장대석을 깔아 축조한 것입니다. 원래는 현 위치로부터 남쪽 200m 지점에 있었으나, 국도확장으로 1980년 8월 이곳으로 이전하였습니다.
석수동 마애종(경기도 유형문화유산, 만안구 석수1동 산32)

석수동 마애종은 암벽에 종과 종을 치는 스님의 모습을 새겨놓은 것입니다. 기둥 들보에 고정된 쇠사슬에 종이 매달려 있는데, 용 한 마리로 표현된 용뉴, 음통, 연꽃봉우리를 표현한 연뢰와 연곽 등은 전형적인 통일신라 범종의 특징을 띄고 있으나 종을 치는 자리인 당좌가 4개이고 종의 모양이 약간 벌어진 형태로 고려시대 범종의 양식도 나타납니다. 이에 석수동 마애종은 고려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되며, 우리나라 유일의 마애종입니다.
안양사 귀부(경기도 유형문화유산 , 석수동 예술공원로131번길 103)

귀부는 비석을 받치기 위한 거북 모양의 받침돌을 말하며, 안양사 귀부는 안양사 대웅전 앞에 위치해 있습니다. 귀부는 입을 굳게 다물고 머리를 바싹 움츠리고 있으며, 네 발을 힘 있게 딛고 있어 강인한 인상을 줍니다. 귀갑에는 육각형 문양을 반복하여 새겼고, 비좌 표면에 구름과 연꽃 문양을 장식하여 신성한 분위기를 연출하였습니다. 웅장하고 조각기법이 정교하며, 다른 유사한 사례들로 보아 고려시대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삼막사 마애삼존불상(경기도 유형문화유산, 만안구 삼막로 478)

삼막사 칠성각 내에 봉안된 조선 후기의 마애불입니다. 거대한 암벽에 돋을새김으로 가운데에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를, 좌우에 일광보살(日光菩薩)과 월광보살(月光菩薩)을 새겼으며, 삼존불 아래에 영조 39년(17763)이라고 새겨져 있어 정확한 조성연대를 알 수 있습니다. 치성광삼존은 보통 불화로 그려 모시는데, 이를 마애불로 새긴 것은 그 사례가 거의 없어 조선 후기 불교 조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삼막사 삼층석탑(경기도 유형문화유산, 만안구 삼막로 478)

탑은 주로 금당 앞에 세워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삼막사 삼층석탑은 경내 육관음전 옆 우측의 축대 자연석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 탑은 고려 고종 19년(1232년) 삼막사의 승도인 김윤후가 원나라 장수인 살리타를 사살하고 싸움에 이긴 것을 기념하여 세운 승전탑이라고 합니다.
삼막사 사적비(경기도 유형문화유산, 만안구 삼막로 478)
삼막사 사적비는 삼막사의 창건과 그 이후의 연혁을 기록한 비석입니다. 비석에 새겨진 글은 마모가 심해 판독이 어려운 상태이나 사적비가 ‘경기 관악산맥 삼성산 아래 삼막사에 있고 왼쪽에는 향로봉이 있으며, 조선 숙종 33년(1707)에 건립되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비석은 사각형의 받침돌에 팔작지붕 모양을 한 지붕돌을 올린 조선시대 비석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중초사지 삼층석탑(경기도 유형문화유산, 만안구 예술공원로 103번길 4)

중초사지 삼층석탑은 원래 당간지주에서 동북쪽으로 약 60m 떨어진 지점에 있었으나, 1960년 유유산업이 들어서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습니다. 단층기단에 면석, 갑석 등에서 간략화된 경향을 보이며 전체적으로 고려시대 경기도 일대를 중심으로 성행한 석탑의 양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비산동 도요지(경기도 기념물, 동안구 비산동 산3-1)

비산동 도요지는 고려시대 청자, 백자를 만들던 곳으로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수목원 내에 있습니다. 이곳에서 발견된 자기는 대접, 접시, 잔, 항아리 등 일상에서 많이 쓰이는 것으로 일반 서민들의 생활에 쓰던 자기들을 굽던 가마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산동 도요지는 고려 후기 백자 가마터로 고려 후기 백자의 제작양상과 조선백자로의 이행과 설립과정을 보여줄 수 있어 우라나라 도자사 연구에 중요한 유적입니다.
석수동 석실분(경기도 기념물, 석수동 산236-9)

삼성산 해발 300m 산등성이 십자바위 밑에 있습니다. 연도가 없는 장방향 석실분으로 장축방향은 산의 정상부 쪽인 북쪽이며, 석실의 각 면은 여러 장의 화강암 판석을 사용하여 쌓았으며, 치밀하지는 않지만 비교적 단아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 고분은 현재 남아있는 유물이 전혀 없어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변에 호암산성, 삼산성에 인접하고 있어 삼국시대에 축조된 돌방무덤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삼막사 명부전(경기도 문화유산자료, 만안구 삼막로 478)

명부전은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명부의 10대왕을 모신 곳이며 인간사후의 선악을 심판하는 곳으로 명왕전이라고도 합니다. 맞배지붕에 주심포 형식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에 내부는 우물 정자형의 천장을 설치한 삼막사 명부전은 조선 고종 17년(1880년)에 건립되었고, 1975년 크게 보수하였습니다.
구서이면 사무소(경기도 문화유산자료, 만안구 장내로 143번길 8)

구서이면사무소는 1914년 과천군 상서면과 하서면이 시흥군 서이면으로 통합되면서 서이면의 행정사무를 맡기 위해 세워진 관청입니다. 원래는 호계리(현재의 호계동)에 세워졌으나, 1917년 안양리였던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고, 1941년 서이면이 안양면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안양면사무소로 사용되었습니다. 1949년 안양면이 안양읍으로 승격되어 안양읍사무소가 새롭게 건립되면서 개인에게 매각되었다가 2000년에 안양시에서 매입, 복원을 거쳐 2003년 전시관으로 개관하여 운영 중에 있습니다. 구서이면사무소는 팔작지붕의 ‘ㄱ’자 형태의 한옥으로 전통건축이 근대기 업무 공간으로 사용된 드문 예로서 건축적 가치를 가지며, 일제강점기 지방 행정 및 수탈사, 광복 이후 대한민국 지방 행정사를 보여주는 국가유산입니다
삼막사 남녀근석(경기도 민속문화유산, 만안구 삼막로480)

삼막사 남녀근석은 2개의 자연 암석으로 남녀의 생식기를 닮아 붙여진 이름입니다. 선사시대부터 생식기를 닮은 자연물을 대상으로 다산과 풍요를 빌거나 복을 기원하는 성기숭배신앙이 있었으며, 삼막사 남녀근석은 삼막사가 창건하기 전부터 숭배 대상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